............ 이것이 이른바 ‘역사 이후’(post-histoire)의 의식상태다. 텍스트 시대에는 역사의 방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념의 폭력이 있었다. 베냐민은 역사의 끝에 다가오는 신의 심판이라는 의미에서 ‘신적 폭력’이라 불렀다. 이른바 ‘탈근대’(postmodern)라는 이름의 지적 유행은 우리의 의식을 이 역사주의적 강박에서 해방시켜주었다. 그렇다고 어디 우리가 더 자유로워졌던가? 오늘날 텍스트를 대신하여 실재를 표상하는 것은 이미지다. 신화적 폭력이라고 해야 할까? 이 상상계의 지배 역시 잔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라캉에 따르면 상상계로 표상될 수도 없고, 상징계로 의미될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 그가 ‘실재계’라 부른 그것은 이미지로 표상하거나 텍스트로 의미하는 순간 더이상 실재가 아니게 된다. 이미지든 텍스트든 자신을 가리키는 기호를 미끄러지게 하면서, 그리하여 상상계로도 상징계로도 편입되기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현실? 실재? 신체?), 진리에 배반당하고 이제는 미에 모욕당하면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그놈을 그냥 우리의 ‘삶’이라 부르자. ........
진중권 씨네21 10.6.18
이제 우뇌에 의해 좌뇌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태.. |